내 곁에 똘똘하고 성실한 참모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덜했을텐데....라는 생각이 예나 지금이나 간절하다. 본부포대장은 간부가 포대장과 행정보급관 밖에 없다. 1년 동안 행정보급관이 4번 바꼈다. 본부포대 행정보급관 직책은 부사관들의 혐오보직이었다. 그렇게 어렵던 시기에 곁에서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 당시 일병이었던 인사계원이었다. 똘똘하기보다는 엄청나게 성실한 놈이었다. 말수도 적고 부끄럽도 많고 술은 입에도 못 대던 그놈이 특유의 성실함으로 나를 보좌해줬다. 그에 대한 고마움이 예전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 각별하다. 내가 전역하는 날까지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나를 챙겨주던 고마운 인연이다. 그놈, 보고싶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해서 겨우 포대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5년 만에 본부포대를 체육대회에서 우승시키고 행정보급관과 기분이 좋아 100만원어치 회식을 시켜도줬다. 이제 좀 편해지겠지하는데 대대장님이 이제 됐으니 인사장교를 하라 제안하셨다. 이건 뭥미??? 거절하기 힘들게 대대장실에 혼자 불러 제안을 하신다. '안 한다고는 말 못할걸?'. 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당돌하게 말씀드렸다. "이제 포대가 제가 그린 그림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역때까지 맡겨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역시 양반이시다. 허허 웃으시며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내가 평생을 대대장으로 모시고 싶은 훌륭한 분, 진정한 군인이셨던 분. 이상하게도 대대장님과는 생각이 잘 맞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지휘관 회의를 앞두고 선배 포대장들(대부분 4년 선배들이었다)에게 오늘 대대장님이 이런이런 말씀을 하실겁니다라고 이야기 드리면 정말 딱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경우가 많다보니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항상 나를 둘러싸고 "오늘은 무슨 말 하실 것 같냐"하고 물어보기 일쑤였다. 사실 그것은 당번병(CP병)의 공로가 컸다. 똘똘하고 아주 눈치빠른 놈이었다. 수시로 나에게 대대장님의 상태나 동향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려주는 놈이었다. 그놈 덕분에 대대장님이 무엇을 기대하고 계시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었고 나의 보고는 항상 대대장님이 물어보시기 전에 이루어졌다. 물어보기 전에 궁금한 점을 미리 보고하고 앞서 처리하는 모습을 보시니 참모로 두고 싶지 않으셨나하는 생각이 든다
갑작스레 당번병과 있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포대가 워낙에 낡고 산기슭에 있다보니 벌집이 굉장히 많았다. 아이들이 벌에 쏘이는 것이 다반사여서 직접 벌집을 떼러다녔다. 나보다 5살 나이가 많던 병장과 다녔는데, 킬라에 불을 붙여 벌집을 떼어내는 방식이었다. 15개 이상 떼어냈고 잠시 쉬고 있는데 "불이야"하고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내가 불을 지른 것이다. 인삼천을 둘러놓았던 탁구장에서 불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옆에는 낙엽이 쌓인 야산이고 그 밑은 포상이 있다. 포상에는 150발의 고폭탄이 있는데 폭발하면 부대 전체가 날아간다. 정신이 아득한데,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다닌다. 방화대 편성표대로 부리나케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화재를 진압한다. '니들 전부 포상휴가 보내준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포대장이 지른 불을 포대원들이 진압했다. 대대장실은 포대 바로 옆에 있다. 대대장님이 당번병에게 불이 난 거냐고 물어보셨단다. 그때 똘똘한 그 당번병이 대대장님에게 "방화대 편성표대로 화재진압 훈련중입니다"라고 보고를 드렸다. 대단한 놈이다. "그래? 열심히 잘들 하고 있구만". 대대장님의 대답이었단다.
대대장님의 말뚝박으라는 끈질긴 구애를 뿌리치고 전역을 했다. 사회에 나가면 무엇이든 더 잘할 것 같았다. 큰 오산이었다. '군대에서 하던거 절반만 하면 사회에서 성공한다'라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전역을 앞둔 군인들에게 통용되고 있다. 이 말은 이렇게 바꿔야한다. '군대에서 하던거 두배는 해야 사회에서 중간은 된다'. 내가 미쳤지, 말뚝박을걸... 이미 지난 일 후회하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참모생활을 하고 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지금 이 길을 가고있다. 전역 후 방황이 길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불확실하기에 걱정도 된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임무다. 나의 미래도 마찬가지 아닐까? 확실하게 만들어보자.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
이 책은 6년전 저자가 저술한 '1인자를 만든 참모들'의 개정판이다. 참모와 1인자,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저자는 2인자는 지위 개념이 아닌 역할 개념이라 설명하고, 2인자는 1인자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참모라고 말한다. 따라서 2인자라 함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맞은, 가장 질적으로 기여하는 참모를 말한다.
그럼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참모가 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직책에 따라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은 시키는 일만 한다. 자신이 일을 찾아서 하지 못한다. 또한 시키는 일도 잘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럼 참모는 무엇인가? 나는 저자와는 다르게 참모는 자기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라 표현하고 싶다. 또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여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을 참모라 말하고 싶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하고 계속 정체되지만 참모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일을 찾아서 하기 때문이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은 '괜히 일만 벌이고 수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시키는 일만이라도 성실히 하다보면 자연스레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최말단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참모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말단이라도 바로 위 상사가 있다. 한 파트에서는 상사가 1인자이고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참모이다. 또한 파트장은 상위 부서장의 참모가 되는 것이다. 그럼 대통령은 1인자의 역할만 수행하는가? 아니다. 국제사회 지도자의 일원으로 그 또한 참모이다. 그래, 직장인 모두가 참모이자 1인자인 셈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참모다, 그런데 2인자가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참모라고 하지만 누구나 2인자가 될 수 있는건 아니지 않는가?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이학수처럼 이건희를 대면하고 조언을 하는 2인자가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속한 파트에서 2인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참모마인드를 가지고 열심히 한다면 2인자 역시 될 수 있다. 그렇게 발전하며 스케일이 커진다면 위대한 2인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학수가 그러했던것 처럼 말이다. 그 역시 처음부터 이건희의 2인자는 아니었지 않은가.
내가 보좌할 만한, 나와 파트너가 되어 줄 훌륭한 보스를 어떻게 찾아야하나?
대다수의 리더들은 리더와 참모를 주종의 관계로 규정한다. 우리나라처럼 유교권의 국가는 더욱 그렇다. 나이차가 있을수록 이러한 경향은 강해진다. 나 역시 고민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리더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리더와 함께 그와 나의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과연 리더는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을까? 거듭된 생각과 고민은 지속적으로 내게 문제를 제기한다. 그럼 리더를 언제 떠나가야 하는가?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생각은 끝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 해보자는 것이다. 내 판단을 믿어보자.
책의 구성.
이 책은 참모 십계명과 리더 십훈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학수&이건희를 비롯한 8가지 사례를 통해 1인자와 2인자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며, 각각의 사례에 본인의 멘토링을 한 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하여 독자들이 내용을 정리하기 쉽도록 도움을 주고있다. 참모 십계명, 리더 십훈요, 저자의 참모 멘토링만 잘 정리해 두어도 요긴하게 써먹을 듯하다.